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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골프장의발견] 힐드로사이CC - 판타지 영화같은 설계 미학

게시날짜 시간
2019.06.25



“이 골프장이 ‘초명문 코스’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죠?”

동반 라운드 하던 후배가 마지막 홀 페어웨이에서, 서양 궁전 모양의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며 문득 물었습니다.

“그렇게 좋았어?”

“네. 저도 웬만한 명문 골프장들 거의 다녀봤는데 여기 정말 멋진데요”

“여기 10대 뉴코스......로 선정된 골프장이잖아”

“에이~, 그런 거 말고요. 진짜 명문들에 비해서 말예요”

“응...... 이 코스 좋네. 한두 번 더 쳐봐야 알 것 같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이듬해, 그 후배가 말하더군요.

“힐드로사이 참 마음에 들어요. 초일류 명문들보다 관리가 좀 덜하긴 한데...... 오히려 더 예쁘고 코스가 좋아요”

오륙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2011년 ‘고품격 회원제 클럽’을 지향하며 문을 연 <힐드로사이CC>는 2016년 대중제 골프장으로 바뀝니다. ‘퍼블릭코스’가 되었으니 다소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그 후배와 지난주에 라운드 하고 되새겨보며 씁니다.

18번 홀(파인코스 9번).
1. 어제와 오늘

- ‘신성한 신의 땅’이라는......

홍천은 우리나라의 시, 군 가운데서 가장 넓은 땅으로 면적이 서울의 3배나 됩니다. 북쪽으로 춘천과 인제, 서쪽으로 경기도 가평과 양평, 남쪽으로 횡성, 동쪽으로 양양과 강릉에 접하고 있습니다.

산이 군 전체의 87%를 차지하는 홍천군의 남서쪽 맨 아래, ‘한강매봉단맥’ 산줄기 낮은 기슭에 <힐드로사이CC>가 있습니다. 강원도 깊은 산속 홍천이 아니라, 경기도 양평 옆 '낮은 홍천'입니다.

‘힐드로사이(Hill de Loci)’는 이름은 라틴어로 ‘신이 내린 신성한 대지’라는 뜻이라고 골프장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데, 배움이 짧은 저는 사전을 찾아보고도 그런 해석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신이 내린 땅 아닌 곳도 있는가’ 하는 속 좁은 생각도 듭니다만, 골프코스를 몇 홀 돌면서 그런 마음은 거의 풀어집니다. 이름과는 달리 이 코스의 흐름은 자연스럽습니다. 한 홀 한 홀의 아름다움은 무덤덤한 이의 마음도 설레게 합니다.

코스 전경(힐드로사이CC 사진).
- 미학적인 설계자

이 골프코스의 설계와 시공은 ‘오렌지엔지니어링’이 했습니다. 화산CC, 몽베르CC, 블루원상주CC, 청평마이다스CC, 소노펠리체CC 등 아름다운 코스들을 빚어낸 회사이지요. 설계 책임자는 미학적인 코스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권동영 님입니다.

이 코스 조성이 계획되던 이천년 대 중후반 당시는 해외의 세계적인 골프코스 디자이너들에게 설계를 맡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습니다. 일본풍의 정원형 코스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도전적인 서구형 코스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추세였지요. 이른바 ‘명문 골프장’들이 ‘로버트 트렌트존스 주니어’, ‘파지오’ 가문, ‘잭 니클라우스’ 등 서구의 유명 설계가에게 앞 다투어 설계를 맡겼습니다.

그런 한편 해외 유명 설계자들이 한국 코스의 설계를 맡으면, 실제 작업에 얼마나 관여하는가에 대한 뒷얘기는 늘 따라다닙니다. 세계 유명 설계가의 이름을 내건 코스이면서도 사실은 한국 설계자와 시공사가 거의 모든 일을 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해외 설계자가 한국 골프장 현장에 몇 번이나 와 봤느냐’ 하는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즈음에, 오렌지엔지니어링은 우리나라에서 골프코스 시공 경험이 가장 많은 회사였으며, 설계자인 권동영 님은 많은 현장 경험과 젊은 상상력이 극의에 이른 때였던 듯합니다. 이 코스는 그가 자신의 설계 철학과 역량을 집대성하여 쏟아 부은 역작이랄 만합니다.

- ‘명작’ 코스가 ‘퍼블릭’이 되다

“세계적인 명작 코스의 전설을 구현하겠다”

‘힐드로사이CC’는 문을 열 때 자신있게 장담했습니다. 시범 라운드에서 코스의 높은 완성도가 골프 전문가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으며,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로부터 '2012년 한국의 베스트 뉴코스 10'에 선정 되는 등) 전문 기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소유주가 서울 강남의 중견 ‘특급 호텔’과 대형 스포츠클럽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를 바탕으로 한 회원모집 마케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골프장 회원권 분양 호황’이 이미 끝나버린 시대의 흐름을 뒤집지는 못합니다. 골프코스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회원 모집은 계획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회원 보증금 반환과 이용권 전환 동의 등의 과정을 거쳐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골프장은 코스의 품질 면에서 호평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으로부터 '2018 한국의 10대 퍼블릭 코스'에 선정되었으며,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의 '2019~2020년 대한민국 50대 코스' 평가에서는 한국 36위 코스로 순위 매겨졌습니다. 남성적인 광활함과 여성적인 섬세함이 함께 살아있고, 도전적이면서도 서정적이며, 평화로우면서도 위협적인 매력을 갖고 있기에, 여느 '명문 코스'들에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글 머리에서 말한 제 후배는 "코스 자체로는 '톱 텐' 못지 않다"며 이 코스를 좋아합니다 )

- 정규 프로 토너먼트 개최 코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정규 토너먼트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규대회가 이 골프장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여자 프로대회인 대회가 2012년부터 3년간, 남자 프로대회인 대회와 KPGA <동아제약 동아ST 챔피언십>이 2016년에 열린 바 있습니다.

이들 대회를 통해서 이 골프장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을 때, TV 중계 화면을 통해 비쳐진 코스 조경의 화려함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넵스마스터피스’ 대회에서는 조형예술 작가들의 설치 예술품들이 골프장 곳곳에 전시되어, 코스 자체의 유려한 조경과 선명하게 조화되는 아름다움이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본 전망.
2. 코스에 대하여

- '신선의 꽃밭'이라는 화전리

이 골프장이 앉은 자리는 홍천군 남면 화전리입니다. ‘화전(花田)’이라는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꽃밭을 가꾸어 살았다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고운 사연을 버리고 모호한 외국어로 골프장 이름을 단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만, 코스를 앉힌 생각과 기법은 ‘화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섬세합니다.

힐드로사이CC는 “자연을 덜 훼손하고 코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페어웨이를 내느라 산을 깎아내는 작업을 되도록 덜하고, 깎아내기보다는 '메워서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63빌딩 9배 분량의 토목공사를 통해 많게는 50미터나 지면을 높였다고 하지요.

- 한국 지형과 '토종 설계가 '

골프코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훼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원래의 자연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되살려내려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골프장 부지 중심부에 있던 작은 봉우리들를 없애면서 그 흙으로 골짜기를 메워 넓은 평지를 만들었다 합니다. 그래서 산중 코스이면서도 넓은 평원에 들어온 듯 탁 트인 느낌이 듭니다.

이런 방법은 산악지형 코스에 경험이 많은 국내 설계가가 맡았기에 추진 가능했던 것입니다. 서양 코스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국내 골프장들은 원래 지형을 거의 그대로 살려서 코스를 앉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트렌트존스 주니어'가 스스로 필생 역작이라고 꼽은 충북 음성의 '레인보우힐스CC'를 보면, 산과 골짜기를 깎고 메운(성토와 절토) 흔적이 거의 드뭅니다. (그래서 한 두 개 홀은 한국 골퍼들의 원성을 듣기도 하지요)

이런 설계 경향에 대해서는 '자연 존중'의 설계 철학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선하는 한편, 우리나라 땅의 현실을 잘 모르고 현장 진행에는 별로 관여를 하지 않기에 나온 결과라는 얘기도 떠돕니다. (앞에 예로 든 레인보우힐스CC의 경우에는 로버트 트렌트존스 주니어가 현장에 자주 와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합니다)

(어느 방법이 좋은 것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힐드로사이CC는 국내 실무 경험 속에서 실력이 무르익은 '거장급' 토종 설계가가 '새로운 자연 흐름을 빚어 낸' 경우라 하겠습니다.

코스 전경(힐드로사이CC 사진).
- 자연보다 자연같은 '산중 평원'

산을 깎았다고 하면 경사면의 절개 흔적이 완연한 '법면 계단식' 코스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코스에서 그런 불편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이런 '신성한 대지'가 있었던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지요.

깃털 모양 낮은 구릉들에 안겨 있는 너른 분지의 모습입니다. 구릉들은 해발 310~370미터 정도로 나지막합니다. 계곡 입구 310미터 높이 땅을 평평히 다져 클럽하우스를 짓고 그 앞 골짜기를 메워 넓고 완만한 분지를 조성했습니다.

보통 36홀은 넣을 수 있는 226만㎡(약 68만평)의 땅에 18개의 홀만 앉혀서 부자연스러운 홀을 없애고 자연 지형이 살아나도록 했다 합니다. 코스에서 가장 낮은 곳이 해발 260미터, 높은 곳이 330미터 정도 되니 산중 지형 코스로서는 높낮이가 적은 편인데, 이 높낮이도 카트 이동로에 주로 배분하였으며, 티잉 구역의 위치를 단계적으로 조금씩 높은 곳에 놓는 방법으로, 페어웨이의 오르내림은 적도록 했습니다.

북쪽으 금학산(654.1m), 동쪽으로 갈기산(658.4m), 서쪽으로는 중원산(800.4m)이 있지만 그 산들은 먼 곳에 보일 뿐이며, 골프장은 낮은 구릉들에 둘러싸인 분지로 느껴집니다.

- '함정'들의 기묘한 아름다움

골짜기를 메워 만든 평원 가운데에 8개의 호수를 만들어 서로 이어지게 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벌칙 구역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주변을 감싸는 구릉들은 살려 놓았으며, 그 구릉을 타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페어웨이를 냈으니 산중 코스와 평지 코스를 함께 라운드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페어웨이는 평균 75미터 폭으로 넓은데, 링크스 코스처럼 자연스러운 언듈레이션(파도 모양의 굴곡)이 물결치고 있어서 단조로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공이 가는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90개의 새하얀 벙커는 위협과 도전 사이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아름답습니다.(들어가면 지옥이지만 보기에는 그림 같습니다) 골프에서 아름다운 것은 흔히 위험하고, 위험한 것은 드물게 아름답지요.

- 점,선,면... '와호장룡' 배경같은...

이 코스는 ‘점(點)으로 플레이’하고 ‘선(線)으로 걸어가’며 ‘면(面)으로 감상’해야 옳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선으로 플레이하고 면으로 걸어가며 점으로 감상’하는 것이지요)

우선 정확한 ‘점’으로 공을 보내야 합니다. 7,423야드나 되는 긴 코스이므로 당연히 티샷을 먼 지점까지 보내야 유리합니다. 그런 한편 티샷한 공이 떨어지는 평균 낙하지점 근처의 한 편에는 대개 장애물이 있으며, 그린은 넓고 굴곡이 많으므로 핀 공략이 유리한 지점을 선택해서 공을 보내야 합니다. 정확한 ‘점(點)’을 향해 치라고 주문하는 코스이지요.

페어웨이의 중심선(線)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플레이 할 수 있다면, 이 코스의 아름다운 조경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소나무와 자작나무, 메타세콰이어와 미루나무 등은 깊은 자연림과 페어웨이 사이의 경계에서 리듬감 있게 도열해 있고,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형형색색의 관목들이 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코스 중심을 곡선으로 넘나들며 하늘과 산을 비추는 호수는 또 다른 세상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걷다 보면 세밀하게 배치해 놓은 액자 속 그림들을 한 면(面) 씩 감상해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페어웨이 뿐 아니라 코스의 몇 군데 높은 자리에서도 그런 배치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만의 감상이겠습니다만 이 코스에서 라운드 하다보면 왠지, ‘이안’ 감독의 ‘라이프오브파이’나 ‘와호장룡’ 영화 속 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골프의 기술을 시험하는 한편으로,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여유를 일깨우는 코스 아닐까 합니다.

- 열여덟 편의 판타지 게임

“실력이 뛰어난 골퍼에게는 어렵고, 평범한 골퍼에게는 쉽게 느껴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코스를 늘 꿈꾸어 왔고 그것을 힐드로사이에 구현했다”

설계가 권동영 님의 말입니다. 이 코스는 (버치코스 1번홀과 파인코스 1번홀이 대칭으로 비슷한 것 말고는) 모든 홀이 개성적입니다. 저마다 다른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함정이 있는 미션 게임 같기도 합니다. (18편 판타지 드라마나 게임 배경 같다고 할까요. 마지막 홀에서 동화 속 성채 같은 클럽하우스를 바라보자니, 8개의 호수와 산을 넘나드는 모험 끝에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는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코스에서는 전략을 잘 짜서, 머리와 힘을 다 써야 설계자의 ‘마법’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연못과 실개천이 많아서 18개 홀 중 11개가 워터 해저드에 연결돼 있으며, 전체적으로 페어웨이가 넓지만 세 홀 정도 빼고는 모두 아슬아슬한 위험이 도사립니다. 클럽 14개를 골고루 사용하여, 설계자가 원하는 높은 샷밸류(잘친 샷과 못 친 샷을 가려내는 변별력의 지표)를 체험하도록 주문하는 코스입니다.

- ‘힘들어사이~’ 라고도 부른다

골프관련 IT 솔루션 업체인 <스마트스코어>가 2018년 골퍼들의 1,520만 건의 실제 라운드 기록을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힐드로사이CC는 강원지역에서 가장 어려운 골프장 중 하나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어려움의 가장 큰 요소는 코스가 길다는 것입니다. 파72 18홀의 전장이 7,423야드나 되니 샷거리가 짧은 골퍼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오비(아웃오프바운즈)구역은 딱 한군데 밖에 없지만 그린에 다가갈수록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으니, 스코어가 잘 나오는 코스를 선호하는 분들은 두려워하는 코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힐드로사이’ 이름을 빗대어 ‘힘들어사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합니다.

그런 한편, 남성적인 웅장함을 풍기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함이 넘치는 조경을 갖추고 있고, 쉬운 홀과 어려운 홀이 강중약으로 교차되어 ‘들었다 놨다’ 하는 매력이 있어서, 코스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게 나타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라운드 후기는 대체적으로, ‘어렵지만 좋다', '좋은데 스코어가 잘 안나온다’는 투의 이야기로 요약됩니다.

3. 인상적인 홀들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추고 있는 이 코스의 홀들 가운데서도 몇몇 특징적인 홀들을 짚어 봅니다.

- 심미적인 홀들
5번 홀 정원조경(그린에서 본 모습).
5번 홀(버치5번 파3 홀)은 내리막 경사면에 장식된 관목 꽃나무 조경이 섬세하며, 티잉 구역에서 보면 주변 3개 홀이 커다란 호수와 만나는 곡면이 테마정원처럼 정교합니다. 작은 인공폭포도 흐릅니다. 경사면에 심은 꽃나무 조경은 골프장 소유주의 아이디어로 설치했다고 하는데, KLPGA<넵스마스터피스>대회가 이곳에서 열렸을 때 TV화면에 비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움이 몸을 붙잡기 때문인지, '한 클럽 길게 잡아야 한다'고 캐디가 일러줍니다.
12번 홀(파인코스 3번).
12번 홀(파인코스 3번 파4 홀)은 어느 골프 잡지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368미터 길이(레귤러 티 315미터)의 평범한 홀처럼 보이지만, 그린 앞에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미루나무 세 그루가 바람에 일렁입니다. (아마도 평가위원들이 어릴 적 시골길에 있던 미루나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50대 이상 세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젊은 분들은 이 홀보다 15번 홀을 더 아름답다고 보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홀임은 분명하고, 페어웨이 모양이 한반도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홀 왼쪽이 힐드로사이CC에서 유일한 오비 구역입니다.
15번 홀(파인코스 6번).
15번 홀(파인코스 6번 파3 홀)은 25미터 높이의 티잉 구역에서 내려치는 173미터(레귤러티 150미터, 레이디티 128미터) 파3홀입니다. 내려가는 경사면에 나무와 꽃, 조형물들이 배치된 정원 조경이 예뻐서, 많은 분들이 가장 인상적인 홀로 꼽습니다. (이 정원은 골프장 소유주의 주장으로 조성되었다 하지요. 코스 설계자는 '골프 코스에 불필요하게 작위적인 조경 요소'라며 의견이 달랐다는데, 골퍼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가을에는 맞은편 숲의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더 아름다운데, 설계자가 추구한 자연스러운 조경은 이런 것인 듯합니다.

- ‘샷 가치’ 높은 도전 홀들
11번 홀(파인코스 2번).
11번 홀(파인코스 2번 파5 홀)은 장타자가 ‘투 온 이글’도 노릴 수 있는 기회와 위험이 도사립니다. 페어웨이 오른쪽 벙커를 넘기는 티샷을 하면 200미터 안쪽의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바로 노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린 앞에는 6개의 험상궂은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지요. 잘 친 샷에 대한 보상과 만용에 대한 응징이 안배된 홀입니다.
14번 홀(파인코스 5번).
14번 홀(파인5번 파5 홀)은 이 코스에서 가장 어려운 홀이고 티샷에서부터 두 번째, 세 번 째 샷과 퍼팅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남자 프로 장타자들은 티샷으로 페어웨이 오른 쪽의 벙커를 넘기고 나서 두 번 째 샷에서 드로우 샷으로 그린을 노리던데, 아마추어들은 두 번째 샷으로 그린 100미터 앞의 골짜기를 넘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린 모양 또한 어려워서 ‘대형 참사’가 흔히 일어나는 홀입니다.

설계자가 마음 먹고 어렵게 만든 홀이라 하며 ‘강원도에서 가장 어려운 홀’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 마음을 흔드는 홀

7번 홀(버치코스).
7번 홀(버치코스 7번 파3 홀)은 남자들에게 특히 인상적인 홀입니다. 219미터(레귤러티 187미터)나 되는 파 3홀로, 그린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 아스라하게 보입니다. 그린 너머에는 수려한 산들이 겹능선을 이루며 펼쳐지고 그린 위에 올라가면 세상이 발아래 있는 듯 영웅심이 일어납니다. 그린의 굴곡이 많고 커서 먼 퍼팅은 두 번에 마무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까지도 감안하여 설계된 홀 아닐까 싶습니다. 구름과 바람의 홀... 버디는 물론 파를 하기도 쉽지 않은데 남자들이 좋아합니다.

- 변곡점과 결말의 홀들

9번 홀(버치코스 9번).
9번 홀(버치9코스 9번 파5 홀)은 620미터(레귤러티 564미터)나 되는 최장 홀입니다. 두 번 째 샷에서 긴 클럽을 잡아야 하지만 오른쪽 낭떠러지와 왼쪽 절벽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린 왼편으로 연못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린 왼쪽 바위 절벽 아래 연못과 비치벙커로 이루어진 조경이 섬세한데, 그린으로 다가갈수록 이 정교한 조경과 클럽하우스가 어울린 모습이 사진엽서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전반의 마지막인 이 홀은 티샷과 두 번째 샷, 마지막 어프로치를 모두 정확한 점에 떨어뜨려야 하므로 승부의 변수가 양산됩니다.

16번 홀(파인코스 7번 파4 홀)은 가장 쉬우므로 버디를 노려야 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변수가 만들어지는 홀입니다. 이 홀에서는 반드시 좋은 점수를 내야 합니다.

18번 홀(힐드로사이CC 사진).
18번 홀(파인코스 9번 파4 홀)은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며 치게 됩니다. 가장 긴 432미터(레귤러 티 369미터) 파 4홀인데다가 그린 앞에 큰 비치벙커가 있어서, 티샷을 충분히 길게 보내 놓지 않으면 긴 채로 두 번 째 샷을 쳐야 하므로 그린에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화 속 성채 같은 클럽하우스를 마주 보며 플레이 하다가 집중력이 풀어져 자칫 실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4. 관리와 시설

- 밀도 높고 고운 양잔디

이 골프장의 페어웨이와 러프, 티잉 구역 잔디는 흔히 ‘양잔디’라고 부르는 켄터키블루그래스 종입니다. 에버랜드 잔디연구소에서 이 골프장을 위해 개발한 ‘힐드로사이 초종’이라고 하는데, 신품종이라기 보다는 여러 종의 켄터키블루그래스를 혼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잔디가 한여름 더위에 약하니 몇 가지 종을 섞어서 파종함으로써 기후 변화에 좀 더 잘 견디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양잔디의 밀도가 높고 잘 관리되어 있어서 아이언 샷을 할 때 느낌이 좋습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선명한 녹색을 띠고 있어서 보기에 좋고, 특히 가을철 단풍들 때 더 좋습니다. 한국잔디들은 가을이면 누렇게 변하지만 이 양잔디는 파란 빛으로 빛나며 자작나무의 흰 빛,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려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냅니다. 특히 이곳에는 메타세콰이어와 느티나무 등 단풍이 곱게 드는 나무들이 많아서 더욱 환상적인 풍치를 이루지요.

그린 잔디는 벤트그래스 007품종입니다. 2007년에 개발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요. 제가 라운드한 날의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 계측 기준 2.7미터였는데 그보다는 빠르게 관리된다 합니다. 그린 잔디의 밀도와 생육은 2019년 6월 초 현재 상태로 보면 좋아 보입니다. (잔디와 코스관리에 관해서는 노경식 님의 '코스관리노트' 도움을 받았습니다)

- 수목원 같은 '장원' 조경

“유럽의 봉건영주가 다스리는 장원(莊園) 같아요”

제 후배가 말하더군요. 클럽하우스에 사는 영주(領主)가 다스리는 독립 영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영지는 차경(먼 산 등의 경치를 끌어들여 조경의 일부로 사용하는 조경)보다는 분지 안쪽의 조경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세 홀 빼놓고는 모두 분지를 둘러싼 구릉들에 안겨있어서 시야가 넓지 않은데, 연못과 나무, 꽃밭 같은 조경 요소들이 수목 정원처럼 정교하게 펼쳐져 있어서 시선을 안쪽으로 고정시킵니다.

코스를 조성할 때 자연림을 유지하면서 2,000여주의 소나무와 구상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8,000여주의 여러 수종들을 재배치해서 심었다 합니다. 수목을 옮겨 심는 것은 법령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돈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자연 숲을 아름답게 재구성한 것이지요. 그 위에 자작나무, 메타세콰이어 등을 추가로 보완했다는데 하얗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자연 숲과 대비되는 색상 조화 위에 알록달록한 야생화들이 피고지는 모습이 신비롭습니다.

- 생태 호수와 '둑종개'

그런 한편 코스의 중심을 관통하는 8개의 호수는 이 골프장의 가장 큰 장점이자 예민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자연계곡수를 담수하여 물을 확보하고 아름답게 조경한 것은 미관과 실용을 겸한 절묘한 선택이었는데, 이곳으로 흘러드는 계류가 많지 않고 지하수도 풍부하지 않아서 호수에 물이 꽉 차 있을 때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양잔디를 관리하는데는 물이 많이 필요하고 자작나무와 메타세콰이어 등 교목들도 충분한 물이 필요한 수종이라서 비가 오지 않으면 호수의 물을 사용해야 하니 바닥을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이 골프장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코스가 덜 세심하게 관리되기도 했었는데, 물 관리가 어려울 때는 코스의 미관을 어느 정도는 양보해야지요. 이 호수들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 코스의 페어웨이와 호수가 만나는 면을 따라 만들어진 실개천을 발견하셨다면, 시각적으로 예민한 분이거나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만큼 골프 구력도 무르익은 분이기 쉽습니다. 기능적으로는 필요 없어 보이는 이 실개천은 이 부근 하천 상류에 서식하는 민물어류인 '둑종개'를 보호하기 위한 생태 이동로라 합니다. 물이 맑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니 이곳 호수의 물이 깨끗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습니다.

- ‘사진빨 나는’ 클럽하우스



인터넷에 오른 이 골프장 후기에는 ‘클럽하우스가 동화 속 궁전 같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유럽의 고성 분위기에 모던함을 접목시킨 오페라 하우스 양식" 이라 하는데, 일정한 건축양식이라기보다는 여러 동화적인 건축물들 모습을 조합한 절충형으로 보입니다. 춘천에 있는 제이드팰리스CC 클럽하우스와 비슷하다는 후기들도 많지만, 알고 보면 많이 다르고 '디테일'은 차이가 더 큽니다.

'셀피' 사진 배경 역할을 많이 하는 클럽하우스이지요. 시설 배치도 편리하게 되어있고 규모도 넉넉해서 손님을 많이 받는 퍼블릭 코스의 클럽하우스로도 기능이 족해 보입니다.

그런 한편 건축 전문가들의 안목으로는 좀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지난 주 함께 라운드 한 동반자 중에는 건축사 한 분도 있었는데 그가 말하더군요.

“로비에 있는 기둥은 왜 이렇게 맥락 없이 많이 세워놨는지 모르겠네요. 옛날에는 하중을 견디는 기술이 없어서 기둥을 많이 세운 건데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서 이런 거 안 세워도 됩니다.”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한 인테리어 장식 요소 아닐까요”

“여기 격자 창틀도 진짜가 아니고 모양만 붙인 모조 장식이네요. 촬영 세트장 처럼......”

그러자 이곳을 좋아하는 제 후배가 말했습니다.

“제 눈엔 그냥 좋아 보이는데요...... 호그와트 마법학교 같잖아요. 요샌 스마트폰 사진 잘 나오면 좋은 데죠 뭐~”

글과 사진 류석무 / 경영인. 골프 스토리라이터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컨텐츠는 계절마다 업데이트하여 재발행 되며 책으로도 발간될 예정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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